히에이산

일본 불교 천태종 총본산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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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산의 정상에 서면, 고요한 아침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그 너머로는 푸른 비와호의 물결이 잔잔히 빛난다. 이곳은 천태종의 총본산인 엔랴쿠지(延暦寺)가 자리한 성스러운 땅으로, 1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 불교의 중심지로서 그 위상을 지켜왔다.

788년, 전교대사 사이초(最澄)는 이 산에 엔랴쿠지를 창건하여, 새로운 수도인 헤이안쿄(平安京)를 동북쪽에서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그 후, 이곳은 수많은 고승과 학자들이 모여드는 학문의 요람이 되었으며, 일본 불교의 여러 종파들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고즈넉한 사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본당인 '곤폰추도(根本中堂)'는 그 웅장함과 신비로움으로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에는 사이초가 처음으로 밝힌 '불멸의 법등(不滅の法灯)'이 1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그 불빛은 어둠 속에서도 변함없이 빛나며, 신앙의 끈을 이어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역사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1571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엔랴쿠지를 공격하여 대부분의 건물을 불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은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에이산의 자연은 사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이며, 겨울에는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하는 순례자들이다. 고요한 산길을 걸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이곳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비에이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그곳은 일본 불교의 심장부이자, 수많은 이들의 신앙과 역사가 깃든 성지이다. 그곳에 서면,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본질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