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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의 산들에 둘러싸인 구가이도의 한 모퉁이, 시로미즈자카(白水坂)라 불리는 이 비탈길은 세월을 넘어 여행객을 맞이한다. 돌로 포장된 길은 에도 시대의 흔적을 짙게 남기고 있으며, 이끼가 낀 돌들은 역사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 비탈길의 이름은 ‘시로미즈자카(城見ず坂)’라고도 불린다. 덴쇼 18년(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성을 공격했을 때, 호조씨의 수비병이 이 가파른 비탈 위에서 대량의 돌을 굴려 히데요시 군은 오다와라성을 보지도 못한 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성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 비탈’이라는 의미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
비탈길을 걷다 보면 발밑의 돌길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어, 마치 여행객의 발을 시험하는 듯하다. 이는 적의 진군을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울퉁불퉁하게 만든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돌길 옆에는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어 빗물이 길을 따라 흐르지 않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에도 시대의 기술과 지혜의 결정체로, 당시 여행자들의 고생과 그들을 뒷받침한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비탈길을 다 내려가면, 아마자케 찻집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에도 시대 초기부터 이어져 온 이 찻집은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여행자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초가지붕 아래, 화로를 둘러싸고 마시는 아마자케와 찰떡은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특별한 맛이다. 이 찻집에는 아코 로시 중 한 명인 간자키 요고로가 에도로 향하던 중 마부 우시고로에게 시비를 걸렸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간자키는 중요한 복수 전에 일어난 작은 일이라 여기고, 치욕을 참으며 그대로 자리를 떴다고 한다.
시로미즈자카를 걷다 보면, 역사의 숨결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이 길은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나뭇잎이 무성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고요함이 감싼다. 여행객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하코네 구가이도의 시로미즈자카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이야기의 무대이며, 방문하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장소이다. 이 비탈길을 걸으며 과거 여행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들이 보았던 풍경을 함께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의 소란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히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