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미 백혈

고대의 숨결을 간직한 사이타마현 요시미마치의 횡혈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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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현 요시미마치의 고요한 구릉 지대에는 고대의 숨결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요시미 백혈(百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6세기 말부터 7세기 후반에 걸쳐 만들어진 횡혈묘군(横穴墓群)으로, 암벽에 수많은 구멍이 벌집처럼 줄지어 있는 광경은 방문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곳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응회질 사암 구릉에 새겨진 219기의 횡혈묘입니다. 각각의 구멍은 직경 약 1미터의 입구를 가지고 있으며, 내부에는 관을 안치하기 위한 ‘관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무덤들은 당시 호족들이 가족이나 씨족을 묻기 위해 만든 것으로, 그 구조에서 고인에 대한 깊은 존경과 기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메이지 20년(1887년), 도쿄 제국대학 대학원생이었던 쓰보이 쇼고로가 이 지역을 발굴 조사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이 횡혈들을 주거지의 흔적으로 생각하고, 아이누 전승에 등장하는 소인 ‘코로복쿠루’의 거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로 이것이 무덤임이 밝혀졌고, 1923년(다이쇼 12년)에는 국가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요시미 백혈의 또 다른 매력은 일부 횡혈묘 내부에 자생하는 ‘히카리고케’입니다. 이 이끼는 어둠 속에서 에메랄드빛의 은은한 빛을 내는 듯 보여, 그 환상적인 반짝임이 방문객을 매혹시킵니다. 간토 평야에서 히카리고케가 자라는 것은 극히 드물어, 1928년(쇼와 3년)에는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환경 변화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보호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 지역 지하에 대규모 군수공장이 건설되었습니다. 나카지마 비행기의 공장이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이전해 오면서, 비행기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하 터널을 굴착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 현재도 그 터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요시미 백혈이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요시미 백혈을 방문하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층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암벽에 새겨진 수많은 구멍은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며, 그 고요함 속에서 과거 사람들의 숨결과 기도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땅을 걷다 보면, 역사의 심연을 마주하는 여행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