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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남국의 태양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곳. 여기, 오키나와의 중심부에 자리한 나하시의 한 언덕 위에, 역사의 숨결이 깃든 성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은 류큐 왕국의 영광과 슬픔을 모두 간직한 수리성이다.
성의 붉은 기와 지붕은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그 아래로 펼쳐진 흰 벽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성문을 지나면, 돌로 깔린 길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그 양옆으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리성은 14세기부터 류큐 왕국의 정치, 문화, 외교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이곳에서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류큐 문화를 꽃피웠다. 성 안의 정전인 세이덴(正殿)은 그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왕국의 위엄을 보여주며, 내부에는 왕좌와 함께 정교한 장식들이 그 시대의 예술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은 영광만큼이나 많은 시련을 겪었다. 오랜 세월 동안 화재와 전쟁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지만, 그때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복원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에 다시 재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의 높은 곳에 올라서면, 나하시의 전경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전통 음악의 선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전통 축제와 공연이 열려, 류큐 왕국의 문화와 역사를 현대에 전하고 있다.
수리성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키나와의 혼과도 같은 존재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성의 돌담을 어루만지며, 그 안에 스며든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해질 무렵, 성의 붉은 기와는 석양에 물들어 더욱 깊은 색을 띠고, 그 아래로는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이 순간, 수리성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듯,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곳을 떠나며, 마음 한구석에는 류큐 왕국의 영광과 슬픔,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깊이 새겨진다. 수리성은 단순한 성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살아있는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