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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 도미오카시의 조용한 거리 모퉁이에, 시간을 초월해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그것이 바로 메이지 5년(1872년)에 창업한 도미오카 제사장이다. 일본 근대화의 여명기에 견산업의 기반을 다진 이곳은, 지금도 그 위엄을 간직한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부지에 발을 들여놓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길이 140미터가 넘는 방적소의 장대한 모습이다. 목골 벽돌 구조의 이 건물은 프랑스식 쌓기라 불리는 벽돌 쌓기 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기와지붕이 일본 전통의 멋을 느끼게 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기둥 하나 없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 펼쳐지고, 한때 300대의 방적기와 500명에 달하는 여공들이 일하던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동서에 위치한 누에고치 저장소 또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각각 104미터의 길이를 가진 2층 건물은 통풍을 고려해 설계되어 누에고치의 건조와 보관에 최적화되어 있다. 동쪽 저장소의 입구 정면에는 ‘메이지 5년’이 새겨진 아치가 있어, 시대의 숨결을 지금에도 전해주고 있다.
이 제사장 설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이 쏟아졌다. 프랑스인 기술자 폴 브뤼나는 생사 검사원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일본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제사 기술 도입에 힘썼다. 또한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오타카 준츄 등 일본의 선구자들도 깊이 관여해 근대 일본 산업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건물이 완성되었음에도 여공 모집은 난항을 겪었다. 서양인에 대한 불안과 오해가 퍼지던 가운데, 오타카 준츄의 딸인 이사미가 스스로 1호 여공으로 지원했고, 그 모습이 다른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모인 여공들은 '도미오카 소녀'라 불리며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최신 제사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일본 각지로 퍼뜨렸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쇼와 62년(1987년)까지 115년간 운영을 지속하며 일본 견산업을 지탱해왔다. 그 동안 관동대지진과 세계대전 등 수많은 시련을 딛고 기술 혁신과 설비 투자로 생산성을 높여왔다. 현재도 창업 당시의 건물들이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세계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곳을 찾으면 메이지 시대의 숨결과 함께 여공들의 미소와 노력, 그리고 일본 근대화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붉은 벽돌 벽에 손을 대면, 시간을 넘어선 이야기가 조용히 말을 거는 듯하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살아 있는 유산이다.